비건 명절상 차리기, 전통의 그릇에 새로운 재료를 담는 법

By: Donald Rivera

최근 몇 년 사이 채식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명절과 제사 같은 가족 중심의 전통 의례에서도 식단 변화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비건을 실천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따로 음식을 준비하거나, 해당 인원이 상차림에서 빠지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차림의 구성 자체를 바꾸거나, 기존의 동물성 재료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글은 처음으로 비건 명절상을 준비하게 된 초보자를 위해, 전통 상차림의 순서와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식물성 재료만으로 상을 차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본다.

비건 명절상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히 고기와 생선을 빼는 것이 아니라, 상차림의 중심축을 재배치하는 작업이다. 전통적으로 명절상은 육류, 생선, 해물로 만든 메인 요리가 중심을 잡고 나머지 반찬이 주변을 돕는 구조였다. 여기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메인 요리의 기준’이다. 동물성 단백질이 빠진 자리를 두부, 콩고기, 버섯, 템페, 밤, 연근 등의 재료로 채우되, 접시의 크기와 배치 순서는 기존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을 차리는 순서에서 가장 큰 변화는 생선과 육류가 놓이던 자리에 구이, 조림, 튀김 형태의 식물성 요리를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어구이가 놓이던 자리에는 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양념장을 발라 구운 두부구이를 올리고, 소고기 산적이 놓이던 자리에는 버섯과 파프리카, 두부를 번갈아 꽂은 식물성 산적을 배열할 수 있다.

상차림의 순서를 바꾸는 두 번째 포인트는 국물 요리다. 명절에는 대부분 소고기나 멸치로 육수를 내지만, 비건 명절상을 위해서는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우려내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무, 양파, 대파를 넣고 끓이면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을 얻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쌀뜨물에 다시마를 우려낸 뒤 표고버섯을 함께 끓여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미역이나 시래기를 넣으면 미역국과 시래기국을 비건 버전으로 재현할 수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탕 종류 역시 콩국물을 베이스로 한 된장찌개나 버섯을 듬뿍 넣은 맑은 국으로 대체하면 기존의 상차림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물류는 비건 명절상에서 가장 수월하게 적응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취나물, 호박고지 등 대부분의 명절 나물은 이미 식물성 재료이며, 양념으로 들기름과 간장, 마늘 정도만 사용하면 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나물을 무칠 때 사용하는 액젓이나 멸치가루다. 비건 명절상의 나물은 간장과 들기름, 참기름,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잡채는 고기 대신 자가 없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 대신 목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을 잘게 찢어 넣고, 양파와 당근, 시금치로 색을 맞추면 기존의 질감과 풍미를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다.

전 유형은 비건 명절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영역이다. 기존에는 고기와 김치, 동태, 굴 등으로 소를 만들어 부쳤지만, 비건 상차림에서는 두부와 숙주, 배추김치(젓갈을 넣지 않은), 버섯을 다져서 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동태전과 굴전 같은 해물 전을 대체할 방법으로는 가지전과 연근전이 유용하다. 가지는 동태전처럼 부드러운 식감을 내고, 연근은 아삭한 식감으로 굴전의 쫄깃함을 다른 각도에서 보완한다. 튀김 반죽에 달걀을 넣는 대신 아쿠아파바(병아리콩 삶은 물)를 사용하면 바삭함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제사상의 앞줄에 놓는 과일과 떡, 약과, 강정, 식혜, 숭늉 등은 대체로 동물성 재료가 포함되지 않아 비건 전환이 쉽다. 하지만 일부 떡류와 한과에는 꿀이 들어가거나, 쇠고기육즙을 섞어 만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떡집이나 시장에서 구매하지 않고 직접 만들거나, 재료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송편과 인절미는 쌀가루만 사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약과와 유과는 꿀 대신 조청이나 올리고당과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야 한다. 식혜 역시 엿기름과 쌀, 설탕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대로 둬도 무방하다.

상차림의 순서와 구성을 새롭게 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장식 재료다. 전통적으로 제사상 위에 올리는 실백, 대추, 밤, 배, 곶감 등의 과일류와 견과류는 모두 식물성 재료이므로 별도의 대체가 필요 없다. 오히려 이 재료들을 활용해 잡채 위에 채 썬 대추와 잣을 고명으로 올리거나, 산적 꼬치에 밤과 대추를 번갈아 꽂으면 상차림의 전통적인 미감을 더욱 살릴 수 있다. 고명으로 쓰이는 지단을 만들 때 달걀 대신 두부나 밀가루 반죽을 얇게 부쳐 노릇하게 구워 채 써는 방식으로 색감을 맞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족의 전통적인 상차림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구성원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상을 차리려면, 처음에는 한두 가지 음식만 대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첫 명절에 전부 비건으로 상을 차리는 것은 기존의 명절 문화에 익숙한 다른 구성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육류와 생선을 제외한 나머지 메뉴는 그대로 두고, 두부구이와 버섯산적 같은 메인 대체 요리를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상을 차리는 순서 역시 동물성 재료가 필요한 음식은 맨 나중에 준비하고, 식물성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먼저 준비하면 작업 흐름이 자연스럽다. 명절이 끝난 뒤에는 다음 차례를 위해 어떤 음식이 호응이 좋았는지,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지 기록해두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비건 명절상은 단순히 동물성 재료를 식물성 재료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 상차림의 원리를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통 상차림이 지향하는 것은 재료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구성의 조화와 상징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고기와 생선이 자리 잡고 있던 자리에 갖가지 식물성 재료를 다른 방법으로 다듬고 익혀 올리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격식 있는 상이 완성된다. 비건 전환 후 처음 맞는 명절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상을 차리는 순서와 구성의 원리에 집중해보는 것이 좋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이전에 해왔던 방식을 하나씩 검토하며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단계를 식물성 재료로 교체해보면 된다. 그렇게 차린 상 앞에서 모든 가족이 함께 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통이 주는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상차림의 격식과 구성의 원리를 따르면서도 재료만 바꾸면, 비건 명절상은 결코 낯선 상이 아니라 익숙한 형식 안에 새로운 내용을 채운 지속 가능한 한 끼가 된다.